
오늘날 정치가 점점 연예계나 스포츠 경기처럼 ‘흥미’와 ‘쇼’ 중심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은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뉴스를 틀면, 어떤 정치인이 무슨 발언으로 이슈를 만들었는지, 그 발언을 둘러싼 지지자와 반대자의 대립 구도가 얼마나 극적으로 펼쳐졌는지에 많은 관심이 쏠리곤 한다. 이렇게 정치가 엔터테인먼트의 속성을 강하게 띠게 되면, 정작 국민의 삶과 사회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책적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쉽다.
여기에 더해,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는 이른바 팬덤정치가 부상하면서, 정치적 토론이 성숙하게 이뤄지기보다는 ‘감정적 대립’이나 ‘진영 싸움’에 치우치는 모습이 빈번하다. 팬덤은 본래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에 열광하고 응원하는 문화적 현상에서 출발했지만, 이 열광이 정치 영역으로 넘어오면 합리적 비판과 토론보다는 지지와 공격이라는 이분법적 태도를 강화한다. 그 결과, 정치권뿐 아니라 시민들 사이에서도 분열이 더 깊어지고, 서로를 이해하거나 협력해야 할 가능성은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1. 정치 고관여자의 역설: 이념적 편가르기 문제
문제는 정치에 깊이 관여하고 늘 관심을 기울인다는 ‘정치 고관여자’들조차 팬덤정치의 함정에 빠진다는 데 있다. 이들은 남들보다 더 많은 정치 뉴스를 접하고, 더욱 풍부한 정보를 축적하고 있음에도, 때로는 자신이 선호하는 정치 세력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극단적 언어를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이를테면, 상대 진영을 향해 별다른 맥락 없이 단순히 “좌파” “우파” 같은 단어를 남발해 버리는 행동이 대표적이다.
“좌파냐 우파냐”라는 잣대는 사실상 매우 폭넓고 유동적인 정치적 영역에서 단순히 사람들의 수많은 의견을 단칼에 한 쪽 진영으로 재단해 버리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가령, 국민의힘 전 의원 유승민이 복지정책을 강력히 지지하며,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정책을 피며 이념적으로 ‘좌파적 요소’라고 불릴 경제관을 가지고 있으나, 국방 분야에서는 강경한 안보관을 바탕으로 ‘우파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 처럼, 어떤 인물이나 정책이 ‘좌파적 성격’을 지닐 수 있지만, 동시에 ‘우파적 요소’를 부분적으로 포함할 수도 있으며, 시대와 사회적 배경에 따라 정치적 입장의 축이 바뀌기도 한다. 이런 다면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좌파’ 아니면 ‘우파’라는 식으로 프레임을 씌우면, 결국 서로의 견해 차이를 구체적으로 살피고 논의할 기회마저 사라지게 된다.
2. 엔터테인먼트화가 부추기는 ‘팬덤정치’
정치의 엔터테인먼트화가 가속화되면서, 특정 정치인을 열렬히 지지하는 팬덤이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일 수도 있다. 미디어는 짧고 자극적인 뉴스나 영상을 선호하고, SNS에서는 짧은 문장이나 이미지 하나로도 순식간에 여론을 장악할 수 있다. 이렇게 인기만을 쫓는 환경에서 정치인들은 자신의 발언이나 행동을 극적으로 연출해 주목받으려 하고, 지지자들은 그 정치인을 마치 ‘아이돌 스타’처럼 옹호하며 열광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합리적 비판과 정책에 대한 토론은 상대적으로 설 자리가 줄어들고, 지지자들은 ‘우리 편’에 대해 맹목적으로 관대해지는 반면 반대편을 향해서는 증오나 혐오의 감정을 서슴치 않는다. 이런 양극화된 팬덤정치는 우리가 당장 해결해야 할 중요한 사회 문제, 예컨대 불평등, 환경, 노동, 교육 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뒷전에 방치하고, 감정적 대립을 극도로 키운다.
정치학 이론 중에서는 ‘분극화(polarization)’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분극화가 심해지면, 다양한 입장이 공존하고 타협점을 찾아가는 민주주의의 기능이 무너질 위험이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정치적 이해관계가 심각하게 대립하는 사회일수록 합의를 이루기가 어려워지고, 그 피해는 결국 국민 전체에게 돌아온다.
3. 공론장과 책임 있는 소통의 필요성
정치는 본래 ‘공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토론과 협의의 장’이다.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말한 ‘공론장(public sphere)’개념에 따르면, 민주주의 사회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다양한 관점을 열어놓은 상태에서 합의를 도출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발전한다. 그러나 엔터테인먼트화된 현실에서는 흥미 위주의 단편적 보도나, 짧게 편집된 짧은 동영상들이 지배력을 갖게 되고, 실제로 깊이 있는 논의를 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이럴 때야 말로 정치 고관여자들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이들은 남들보다 더 많이 정치에 시간을 투자하고, 여러 매체를 통해 폭넓은 정보를 얻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이므로, 공론장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정작 과한 이념적 다툼을 남발하거나 팬덤에 매몰되어 있다면, 공론장에서는 지적이고 책임 있는 논의가 이뤄지기 어렵다. 오히려 갈등을 고조시키고 민주적 숙의 과정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끝맺으며
우리 사회와 정치에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진짜 정치가 필요하다
결국, 엔터테인먼트화된 정치와 팬덤정치가 극단적으로 치닫는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온다. 정치는 본래 공공의 이익을 지향하는 활동이며, 다양한 갈등을 조정하고 집단 지혜를 모아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핵심적 임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정 정치인의 발언을 흥밋거리처럼 소비하는 데만 몰두하고, 그를 지지하거나 비난하는 팬덤들이 감정적 대립으로 치닫는다면, 중요한 정책적 논의는 사라지고 사회 갈등은 더욱 깊어질 뿐이다.
우리는 이제 다시금 ‘정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정치가 단순히 ‘인기 싸움’이나 ‘진영 몰이’가 아닌, 공동체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대화하고 협력하는 장이 되려면, 엔터테인먼트화와 팬덤정치에 대한 자발적 반성과 제어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풍부한 정보를 가진 만큼 공적 담론을 이끌 힘이 있는 정치 고관여자들이 있어야 한다.
정치는 결코 ‘흥밋거리’로 끝나서는 안 된다. 정치가 진정으로 국가와 사회의 방향을 결정하고 각종 현안을 해결하기 위하길 바란다면, 우리 모두는 조금 더 책임감 있는 태도로 정치에 참여하고 비판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만 우리는 정치의 엔터테인먼트화와 팬덤정치가 초래하는 분열을 넘어, 성숙한 민주사회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